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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생활탐구

연산군 장녹수 관계 알기

생활백과 2017. 2. 2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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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장녹수 관계 알기 입니다.


연산군장녹수 두 사람은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였을까요?


연산군장녹수 이 두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였고, 같은 시대에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일지 그리고 어떤 관계를 유지했을지 궁금하실텐데요.


연산군장녹수 두 인물의 관계는 여러 드라마 및 영화에서 다루어 졌던 인물입니다.

덕분에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께서는 연산군장녹수 두 인물의 관계를 잘 알고계시겠지만 최근 역적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연산군장녹수 이 두 인물이 다양한 미디어의 소재가 되었던 이유는 연산군이라는 인물이 특이성 때문도 있습니다.


그럼 연산군장녹수 두 사람을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산군은 조선 10대 임금입니다.


연산군어머니는 폐비 윤씨로 좋지 못한 행적으로 인해 폐비로 궁에서 쫗겨나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연산군어머니가 폐비 윤씨였다는 사실을 연산군은 어린시절동안 몰랐으나, 즉위 1년 후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연산군어머니가 사망하게 된 사건의 배경을 모두 알게 된 연산군은 결국 당시 폐비 찬성 세력들을 모두 살해하게 됩니다.


사실 연산군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총명한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으나, 연산군어머니 사건을 알게 된 후 심적 변화가 있었을것으로 추정됩니다.



연산군은 결국 왕권을 강화하고 사냥과 사치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게 되며 국고 사정을 악화시킵니다.


그리고 연산군아버지 후궁이었던 정씨와 엄씨로 인해 연산군어머니가 살해되었다고 생각하여 두 후궁을 직접 죽여 산야에 벌리는 폭군의 행태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연산군의 이와 같은 행위를 비판하는 투서로 인해 한글 교습도 중단시키고 미녀와 양마를 구해 성균관의 학생을 쫓고 그곳에서 놀이를 하는 등 황음에 빠지게 됩니다.


덕분에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인해 폐왕이 되었고 폐위된 후 2달뒤 역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연산군장녹수 두 인물을 연결하여 항상 회자거리가 되는 이유는 실제로 연산군시절 기생출신이었던 장녹수가 후궁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장녹수는 가난해서 시집도 여러번 갔으며 자식도 지니고 있던 흥청의 기생이었습니다.


장녹수는 장한필이라는 사람의 첩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입니다. 그러다가 예종의 둘째 아들이었던 제안대군의 노비와 혼인하여 아들을 하나 두게 됩니다.


장녹수는 노래와 춤을 잘 배웠고 이로 인해 창기가 되었으며 30세 나이에도 16세 아이와 같은 얼굴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흥청이라는 곳은 연산군 시절 1등급 기녀들이 뽑혔던 곳으로 연산군이 기녀 제도를 개편한 뒤 창기 중 얼굴이 예뻤던 자를 궁으로 들여 즐기곤 하였습니다.


연산군시절 흥청을 통해 향락에 빠져 들고 국고를 낭비하여 노는 자태를 보고 흥청망청이라는 단어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연산군장녹수는 이처럼 흥청의 기녀를 궁으로 들인 시점부터 만나게 됩니다.


연산군장녹수 두 사람의 신분 차이가 컸지만 장녹수가 연산군을 아이처럼 노예처럼 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연산군이 화가 나 있어도 장녹수를 보면 그 화가 풀렸다고 합니다.


기록을 보면 연산군장녹수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장녹수가 왕을 조롱하여 어린아이 같이 하였고 욕하기를 노예처럼 하였으며 노비, 가옥, 전답을 선물해 장녹수의 재산이 많았다고 합니다.


연산군장녹수 두 사람의 애정이 깊어갈수록 장녹수는 그 권세를 함부로 휘둘렀고, 다른자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으며 뇌물, 청탁을 모두 받았습니다.


덕분에 장녹수 주인인 제안대군 장인의 벼슬도 함께 올라가게 됩니다.


왕살의 어르신인 인수대비도 연산군장녹수 두 사람의 이런 작태를 걱정하며 장녹수를 멀리하라 하였으나 연산군은 더욱 더 장녹수를 찾게 됩니다.


결국 장녹수는 나라의 실권을 쥐게 된 실세로서 종3품 숙용으로 오르고 많은 사람들이 장녹수에게 재물을 받치며 청탁하게 되기에 이릅니다.


연산군장녹수 두 인물의 이런 행태는 결국 중종반정으로 인해 끝을 맺게 되고 장녹수는 참형에 쳐해집니다.



장녹수의 행패로 인해 그 시체에 기왓장과 돌을 던지며 수 많은 사람들이 나라의 국고를 탕진한 죄를 물었고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후 장녹수의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며 하인들도 죄를 묻게 됩니다.


연산군장녹수 두 사람은 연산군이 가지고 있던 광적인 행위를 멈출 수 있는 관계였지만 결국 이를 나쁜 쪽으로만 활용함으로서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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